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입시위주 교육/해결책들 (문단 편집) === 형평성 포기 및 평가자 신뢰하기 === 이 의견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형평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입시위주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지나친 경쟁' 인데,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이 지나친 경쟁이 암기나 시험 요령과 같은 상당히 소모적인 역량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경쟁이 다소 지나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고력이나 창의력과 같은 생산적인 역량에 주안점을 두고 있고 따라서 이러한 경쟁에서 상위에 속한 학생들이 정말 '우수한 인재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입시위주 교육에서 경쟁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상당부분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비생산적인 역량에 대한 소모적인 경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의 원인으로 정책적인 문제나 교사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학생과 학부모들도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평가문항의 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내용타당도'와 '형평성' 이다. 내용타당도는 '그 평가에서 물어야 되는 것을 얼마나 잘 묻고 있는가?'이다. 이는 사회적 요구와도 결부될 수 있어 예를 들어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암기 위주의 문항으로만 이루어진 평가라면 사고력과 창의력 같은 고등사고능력을 잘 평가할 수 없기에 아무리 배운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였더라도 높은 내용타당도를 가질 수 없다. 형평성은 '누가 왜 그러한 점수(또는 평점, 학점)를 받았는지 근거에 기반에 두어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 를 의미한다. 문제는 우리의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지나치게 '형평성' 에만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신경쓰는 내용타당도라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서 나왔는가?' 이다. 얼핏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형평성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니깐. 그런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지나친 형평성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내용타당도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는 간단한 원리이다. '왜 갑동이는 80점이고 을동이는 90점인가?' 를 명확하게, 점수가 낮은 갑동이나 갑동이 부모들도 도저히 할 말이 없을 만큼 평가가 높은 형평성을 가지려면 문항 자체가 소위 '닫힌 질문' 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열린 질문' 은 다양한 사고와 창의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지만,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채점하든 닫힌 질문에 비해 낮은 형평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열린 질문에 대한 열린 답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채점하면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반론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이것은 채점에 무제한의 인력과 무제한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인력이 모두 정직하다는 극히 이론적인 조건에서만 성립하고,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만일 '열린 질문' 으로 이루어진 시험을 치룬 학생이 10명이고 이 중 5개의 다른 유형의 답이 나왔다면 이 5개의 서로 다른 답에 대해 서로 어떻게 점수의 차이를 두어야 될 것인지 고려해야 될 경우의 수가 4+3+2+1=10가지이다. 그것도 시험의 총 열린 문항 수가 1문항일 때로 계산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많아도 괜찮다. 그러나 실제로는 10가지 정도가 아니다. 보통 교사 1인이 채점해야 될 답지의 수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백여 개이며, 일단 여기서는 100개라고 하자. 문항 수는 총 20문항이며 이 중 1/4인 5문항만이 열린 질문이라면 교사가 채점해야 할 총 열린 문항의 수는 500개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 열린 질문에 대해 불과 10%만이 다양한 답을 내었다고 가정하자.[* 사실 이 정도면 열린 질문이라 하기도 애매하지만 보수적으로 가정한 것이다] 그러면 실제 교사가 고려해야 될 서로 다른 답안의 수는 50개이며, 이들 간에 점수를 어떻게 부여해야 될지 고민해야 될 경우의 수는 49!(팩토리얼), 약 1,225가지가 된다. 단답형도 아닌, 글자수 세자리 수의 서술식 열린 답변에 대해 문장의 의미, 단어의 사용, 맥락 등 몇 점이 더 높고 몇 점이 더 낮아야 되는가에 대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채점이 1,000가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각 건에 대해 쿨하게 평균 10분씩만 투자해 결론을 낸다 하면 초검만 따져도 12,250분 (204시간)이 소모된다. 보통 중간기말 치면 최소 재검은 한다. 삼검, 사검도 허다한 일이다. 거기다가 열린 질문이라지만 비교적 정해진 대로 답을 쓴 나머지 450건 및 1,500개에 이르는 닫힌 형태의 문항의 채점에 필요한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 2~3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채점 전담 조교를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상식적으로 수백 개의 열린 문항에 대해 정량적으로 오류없이 평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대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에 따른 내용타당도를 만족하는 평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정량적 형태의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정성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정성적 평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수행평가에 대한 인식만 봐도 그렇다. 수행평가의 목적 자체가 전술한 문제점, 즉 형평성을 강조하는 정기고사가 평가의 내용타당도를 충분히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데 있다. 따라서 당연히 암기 위주의 닫힌 질문보다 과정 위주의,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평가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고 이는 정성적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수행평가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학생 점수를 더 준다더라 하는 식이다.[* 그런데 보통 성실하고 심성 착한 학생들을 교사가 맘에 들어하기 마련이고 대체로 이런 학생들이 과제를 남들보다 더 잘해오는 경향이 있다. --맘에 들어서 점수 잘 주는게 아니라 과제를 잘 해와서 맘에 드는건데 어쩌라고;;;--] 그런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정성적 평가는 꽤 정확하고 공정하다. 해보면 안다. 실제 영재교육원 선발 면접 등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해 보면 한 학생에 대해 동시에 여러 명이 채점하는데 각 면접관들이 부여한 점수가 놀랍도록 일치한다. 꼭 짜고 친 것 마냥 말이다. 물론 영점은 다를 수 있다. 군대에서 총 잘 쏘는 군인들에게 총 쏴라고 해도 총의 영점이 틀리면 서로 같은 데 못 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정성평가를 그냥 하지 않고 영점 조절 작업을 한다. 어떤 식이냐면 시험이나 대회 주최 측에서 다양한 수준과 난이도의 답안 내지 면접내용을 만든 후 이에 대해 면접관들에게 모의 평가를 시킨다. 그 후 서로 점수를 비교하고 난 왜 이 점수를 줬는지에 대해 토의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면접관들끼리 생각이 어느 정도 통일되면 다시 모의평가 후 토의하고 이 과정을 짧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몇일간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면접관들 간에 놀랍도록 일치한 채점 결과를 보인다. 즉 전공자들 및 전문가들은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란 얘기다. 교사들도 평가에 있어 전문가이다. 말 그대로 평가 하나만큼은 학원강사가 교사를 죽어도 못 따라간다. 학원강사가 하는 것은 기존 문제 유형을 답습하는 것이지 새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참신한 문제는 EBS교재에 많은지 생각해보자. 교사들이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원 강사는 수백 명이 쓴 답을 채점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교사들이 시행하는 정성적 평가에 대해 무턱대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성평가=허술한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정량평가는 그 '정량' 에 치중하느라 평가에 반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량평가 역시 단점이 명백한 평가 방법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상당히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학교 정기고사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점수에 불만이 없는데 교사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이 내용 썼으니 몇점 주고 이 내용 안 썼으니 몇점 감점하고 하는 식으로 기계처럼 정확하게 채점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불만이 없는데, 정작 교사들은 학생이 쓴 답안 내용을 보면서 '아 실제 이 학생의 이해도는 더 높은 수준인데 기계처럼 공정하게 채점하다보니 학생의 이러이러한 이해도는 반영될 수 없구나', 또는 '이 학생은 크게 아는 것은 없는데 희한하게 채점요소만 골라서 썼구나' 라는 것을 명백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계처럼 시행하는 정량평가가 정말 공정한 것인가? 학생과 학부모들 자기 점수에 대해 입 다물게 하는데는 최고의 방법이지만 과연 이 방법이 옳은 것인가? 충분히 의구심을 품을 만 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가 소위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는 일치감치 이 ‘형평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하였다. 즉 열린 문항들을 출제하여 사고력과 창의력 등 학생의 종합적인 지적능력을 평가하고자 하여 내용타당도의 훼손을 막지만, 정량 평가는 어느 정도 포기했다는 것이다. 평가의 형평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용타당도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고등학생이 기말 프리젠테이션 끝나자 마자 그걸 듣고 있던 교사가 ‘자네는 C이네’ 라고 말하는, 형평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즉 우리나라 기준으로 평가에 정량적 요소가 부족한 평가가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모든 교육은 평가와 분리될 수 없기에, 특히 학교교육이라면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소위 ‘열린 수업’,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수업’은 보다 정성적이고 질적인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시행될 때 입시위주 교육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을 보다 생산적이고 교육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이에는 먼저 학생과 학부모들의 평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변환이 필요하다. 내가 낮은 점수를 받으면 나쁜 평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은 평가가 아니다. 보다 정성적이고 질적인 평가를 받아들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문단,title=입시위주 교육,version=2142,paragraph=7)] [include(틀:문서 가져옴/문단,title=입시위주 교육/성취도,version=3)]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입시위주 교육/초중등교육, version=9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